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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성한 산 마차푸차레에 오른 유일한 사람
    보편적인 문화생활 2014. 2. 13. 11:52



    인간이 오를 수 없는 聖山에 발자국 남긴 부러운 사나이
    한번 보면 몸살 앓는다는 마차푸차레… 1957년 네팔정부 예외적 등반 허가
    정상 눈 앞에 두고 폭설로 좌절… "여신은 끝내 인간의 발을 거부했다"

    전세계의 산악인과 등산 애호가들에게 가장 널리 사랑 받는 트레킹 코스는 네팔의 안나푸르나 산군이다. 쿰부 히말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과 히말라야 전역에서 가장 잘 정비되어 있는 편의 시설들을 갖추고 있는 이 지역은 해마다 수만 명의 트레커들을 북적거리게 만드는 대중적 관광지가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의 등산 애호가들이 처음으로 해외 트레킹을 떠날 때 가장 먼저 선택하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크게 뭉뚱그려 ‘안나푸르나 트레킹’이라고 하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푼힐전망대(3,193m)까지만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는 ‘맛뵈기 코스’다. 다른 하나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까지 다녀오는 코스인데 대략 열흘 정도가 소요된다. 제대로 된 코스는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이다. 대략 25일 정도가 소요되는 환상(環狀) 산행인데 위에 언급한 두 코스를 모두 포괄하여 그야말로 ‘안나푸르나의 모든 것’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그런데 어떤 코스를 선택하든 트레킹 기간 내내 시선을 독점하는 기막힌 산이 하나 있다. 완벽한 예각 삼각형의 형태로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날카로운 설산, 어쩌다 방향을 틀어 다른 앵글로 올려다보면 마치 물고기의 꼬리처럼 희한한 대칭을 이루며 빛을 발하고 있는 신비로운 산. 이 산의 이름은 그러나 안나푸르나(8,091m)가 아니라 마차푸차레(6,997m)이다.





    산악인들은 말한다. “단 한 번이라도 마차푸차레를 올려다 본 사람은 평생토록 그 산을 잊을 수 없다.” 마차푸차레는 현지어로 ‘물고기 꼬리’를 뜻한다. 덕분에 영문 명칭은 ‘피쉬스 테일’(Fish's Tail)이다. 안나푸르나 산군에 헤아릴 수도 없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그 숱한 로지(lodge)들의 이름을 들여다보라.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한 집 건너 ‘마차푸차레’ 아니면 ‘피쉬스 테일’이다. 이 산은 너무도 인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기점 도시인 포카라에서도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사람마다 인격이 있듯 산에도 산격(山格)이라는 것이 있다. 마차푸차레쯤 되면 그 산격이 최고의 경지에 올라 성산(聖山)으로 숭배되기 마련이다. 마차푸차레에 홀린 트레커나 산악인들은 흔히 이렇게 묻는다. “저 산에 오를 수 있습니까” 그러면 가이드나 현지인들은 큰 일 날 소리를 한다는 듯 두 눈을 부라리며 이렇게 답해주기 마련이다. “저 산은 우리의 성산입니다. 아무도 오를 수 없습니다.”

    나 역시 그랬다. 마차푸차레를 처음 보았을 때, 그리고 더 이상은 가까이 갈 수 없을 만큼 바투 다가가서 그 산을 올려다 보았을 때, 정신이 혼미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필름 몇 통을 소진해버릴 만큼 숱한 사진을 찍은 다음에도, 눈을 감아버리거나 잠이 들었을 때도, 그 산의 신령스럽고 매혹적인 모습은 망막에 또렷이 남은 채 지워지지 않았다. 만약 저 산에 오를 수 있다면. 나는 마차푸차레의 빛나는 정상에 눈을 고정시킨 채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물었다. 위험한 긍정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린다. 만약 저 산에 오를 수만 있다면 그 과정에서 죽는다 해도 후회하지는 않으리라. 마차푸차레는 그만큼 치명적인 마력을 가진 산이다. 나 같은 얼치기 산악인마저 이토록 존재론적 전율을 느낄진대 히말라야 등반에 목숨을 내건 진짜배기 산악인들은 그 얼마나 몸살을 앓아왔겠는가.

    하지만 네팔 정부는 완강하다. 마차푸차레에는 입산금지령이 내려져 있다. 공식적으로 ‘성산’이라 명명되어 있고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등반허가서를 내주지 않았다. 덕분에 신열을 앓듯 그 산을 넋 놓고 바라보는 모든 산악인들에게 현지인과 가이드들은 약간의 배타적 자부심을 만끽하며 그렇게 말해오고 있는 것이다. “저 산은 누구도 오르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리고 너무도 부럽게도, 단 하나의 예외가 있었다.

    바로 1957년의 영국 마차푸차레 원정대였다. 오직 5명으로 이루어진 이 소규모 원정대는 당시 네팔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등반허가서를 받고 이 산에 올랐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리고 당시 원정대를 이끌었던 윌프리드 노이스(1917~1962)는 그 기록으로 <마차푸차레 등반기>(Climbing the Fish's Tail, 1958)라는 책을 썼다. 내가 가장 흥분하며, 그리고 질투심에 몸을 떨며, 홀린 듯이 읽어버린 산악문학이다.

    윌프리드는 마차푸차레의 정상 피라미드 바로 밑에 서서 탄식인지 찬양인지 알 수 없는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마차푸차레의 정상 피라미드와 비교하면, 알프스의 마터호른은 조잡한 암괴에 불과하다. 바이스호른조차 평평한 암괴에 지나지 않는다.” 윌프리드 일행은 성산 마차푸차레의 처녀지에 ‘야곱의 사다리’니 ‘닉’이니 하는 식의 새로운 루트명을 갖다 붙이며 정상으로 나아간다. 자작나무를 깎아 만든 말뚝으로 확보를 하고 뻣뻣한 마닐라로프를 고정자일로 설치하는 ‘원시적인 형태’의 등반이었지만 이제 정상은 코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정상을 불과 30m 남겨놓고 청빙(淸氷) 기둥들과 마주쳤을 때였다. 이 등반기의 클라이막스는 바로 여기다. 윌프리드는 공포와 허탈함 그리고 체념에 휩싸여 이렇게 썼다.

    “두 서너 시간 후면 정상을 밟을 수 있다고 낙관하던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오며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폭설이 쏟아져 내렸다. 마차푸차레의 여신은 그녀의 정상에 인간의 발길이 닿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하는듯 했다.” 그것이 끝이다. 그때가 인간이 마차푸차레의 정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순간이었고, 그 이후에는 누구도 다가갈 수조차 없게 되어버렸다.

    윌프리드는 물론 분루(憤淚)를 흘렸지만 동시에 가슴 한켠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다행이다. 나는 생각한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인간이 오를 수 없는 산도 있어야 한다. 나는 진심으로 현지인들의 믿음을 받아들인다. 마차푸차레의 정상에는 여신이 산다. 인간은 앞으로도 영원히 그곳에 오를 수 없을 것이다.


    출처 http://blog.daum.net/alpus7/7355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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